일상

“지금 가슴이 뜨겁습니다.”

heaji 2023. 8. 15. 18:01

지금 가슴이 뜨겁습니다.”

김형수의 수필로 읽은 영화<탄생>

영화는, 1836년 조선의 흰 눈 쌓인 압록강국경을 통과하려는 순간, 통행증을 조사하는 변문 문지기를 돌림병으로 둘러 따돌리는 부의 위트로, 위장된 수례는 조선 최초의 서양인 방신부 일행이 압록강 국경을 무사히 통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당시 조선시는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너무나도 심했다. 그래서 서양인 신부가 조선의 눈을 피해 선교활동을 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일이였다. 영화에서 보면 나뭇가지에 항아리를 메어놓다가 위급 시 줄을 당기면 항아리가 땅에 닿아 깨지며 위험신호를 알려온 것을 알 수 있다. 김대건(:윤시윤)은 조선으로 들어온 프랑스의 모방신부에게 15세 때 세례게 된다(세례명: 안드레아). 김대건의 아버지(김제준)모방신부의 뜻을 전했고, 모방신부는 인의 의지와 부모의 신앙을 보고 그에게 신부가 기를 권했고, 대건은 그 운명을 받아드린다. 그의 어머니(고우슬라)신부가 되는 것이 어을 의하는 것을 아느? 너무나 엄청난 일이기에 좀 더 깊이 생각해보...” 이때, 망 서림 없, “성령이 하시는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금 제 가슴이 겁습니다.”심경털어놓으며 결심을 하게 된다. 모방신부의 천거로 신부가 되기 위16세 나이로 유학생 2명과 께 마카오 유학길에 나서게 되며, 중국 신자 두 사람의 안내를 받아 120리길을 6개월 만에 마카오에 도착하여 그곳 신학생들의 환영을 받으며 유학생활이 시작된다. 김대건(金大建)은 유학생활을 통해서 생경한 라틴어와 불어에 능통하게 됐으며, 수학측량기술까지 섭렵하게 된다. 특히 동북아지도에도 큰 관심을 갖게 된다.

이 무렵 청나라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지고 5개항 개항과 홍콩섬이 양되며, 조선과의 수교를 위한 통역관으로 발탁되어 프랑스 극동 함대를 따고 조선 땅을 밟을 기회를 얻었으나, 약속 파기로 군함을 타고 조선에 입국하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한편 만주를 지나 경비가 삼엄한 의주를 통해서 입국을 시도한.

포졸들의 눈을 피해 혹독한 겨울, 얇은 거적 대기 하나 없이, 탈진직전에 대건을 해 많이 기도하는 여인(중국 해동관 주인: 즈린)를 만나며, 그 여인은 고맙습니. 살아오셔서” “하며 발질을 하고 말에 태우고 눈 덮인 국경산천을 달리는 모습은 연민의 정 같은 여운을 남기며 흐뭇한 감동을 자아낸다. 1845년 중국 상하이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최초의 조선인 천주교 사제 탄생>, 기적적으로 9년 만조선인 신부가 되어 고향땅에 돌아와 어머니와의 약속된 부활절 미사에 그의 어머니께 성찬의 떡을 드리며 재회하게 된다. “신부님 부디 몸조심하십시오.”라고 당부하는 모습에서어머니의 성스러운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대건은 곧 바로 서울로 올라가서 영국에서 신부님들을 안전하게 모셔오기 위한 바다 길을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 신자들의 도움으로 세곡 100석 정도 나르는 허름하고 작은 나무배 한척을 구입하게 되고, 18454월에 서해안 항해에 나서게 된다. 광활한 바다 한 가운데서 커다란 폭풍우를 만나게 되는데, 큰 파도가 덮쳐서 배안에 구멍이 뚫어지고 바닷물이 차올라 마지막 남은 식마저 바다에 던져버리는 등 천신만고 끝에 이국땅 양자강 영국영사관에 도착하게 된. 해상액션은 가히 손에 땀을 쥐게 한 명장면을 연출한다. 폭풍 중에 고요함을 보는 것 같았다. 영국영사는 대건에 이 작은 배로 항해한 것이 무모한 일이라며 책망하, 대건은 작을 뿐 형편없는 배가 아임을 역설하며, 임진왜란 때 거북선의 활상에서 정부가 도망한 일은 있었지만, 백성은 도망한 일이 없었고, 목숨을 걸고 끝가지 웠다.”라는 대목에서 그의 애국심을 엿볼 수 있어서 가슴이 뿌듯했다. 선교사 입비밀 항로를 찾던 백령도 부근에서 편지를 전하려다 발각이 되어, 체포된다.“ 기 양인이 있.”

포도청에 갇힌 채 좌포도대장 이응식과 대화 내용이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당시 현석문이 잡혔고,“그가 김대건과 함께 죽기를 원한다.”“신부님도 우십니까?”

이제 눈물을 참아야할 이유가 없게 됐습니다.“그가 마지막까지 지켜주고 싶은 사람입니?”

포도청의 지시로 지도 작업을 한 내용을 받아본 헌종은, 지도의 우리강산 이름이 서양언문으로 적힌 점과 당시 조선에서는 김대건 외에는 서양의 글을 안자가 거의 없는 점 등을 들어, 김대건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한다. 그러나 조정 대신들은 김대건이 프랑스함대와 내통한 점이 있고, 지금 처벌하지 않으면 장차 큰 화를 면키 어렵다는 점을 들그를 효수경중(梟首警衆)하기를 상소한다. 김대건이 영어, 스페인어, 라틴어, 중국어,랑스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한 점과 국가적으로 쓸모가 있는 인재였기 때문에 천주교만 버리면(배교)살려주겠다. 고 하였으나, 끝내 이를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굳건한 신앙을 지키며 새남터형장에서 참수 당한다. 참혹한 참수당시도 편안한 자세로 형을 받아드리며 순교직전까지 저는 행복합니다.”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우리를 의연하게 했으며, 새남터 형장에 구원의 빛줄기가 드리워진 것 같았다.

조선 최초의 신부가 된 김대건은 짧은 선교의 기간이지만 조선 근대화를 여는데도 크기여한다. 영화 자산어보에 보면, 조선 천주교의 초기에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형제들이 천주학을 믿는다는 이유로 정약종은 순교를 하고 다른 형제들은 전라도로 유배당한다. 조국의 시간에 보면 영화 자산어보를 보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정약전 형제가족들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이 꼭 우리집안 이야기 같아요?”라고 아버지에게 묻는 장면이 떠오르며, 조선 천주교의 전래과정과 순교자의 길이 순탄지만 않았음에 눈시울을 적시게 하고, 가슴 깊이 역사적 사실들을 다시 상기시키게 한다.<기해박해 때의 참혹상>

 

기해박해(己亥迫害):1839년 헌종5에 일어난 2차 천주교 박해로, 3명의 외국인 사제와현석문을 포함한 100여 명이 순교한 사건.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제작영화 탄생을 보며 2022. 11. 30. >

 

月惠 김 형 수 khyngsu@hanmail.net

한국수필 등단(2006), 한국수필가협회한국문인협회회원, 리더스에세이 회원

한국기독교개혁신보 시 <사닥다리>로 문학상 수상(1994)

공문원문학 시인 등단(2003), Kesitan(크시타물류)대표 호산나교회 안수집

저서: “모든 꽃잎은 당신의 손길이 그립습니다.”3

전화: 010-4577-7438 블로그: heaji.com (붉은 진달래)

주소: 부산시 사하구 하신중앙로 291 4441(하단동)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캠프  (0) 2023.08.15
의의 면류관(the of righteousness)  (0) 2023.08.15
영화 "증인"  (0) 2023.08.15
아리랑  (0) 2023.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