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김 형 수
⌜엄마를 부탁해⌟책을 읽고 나서, 저자 : 申 京 淑 <창비, 2008>
❍ 제목: 어머니의 산책
❍ 작품의 표지는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으로 “밀레의 만종”<한 남자와 한 여자가 들녘에서 삼종기도를 올리는 장면>은 농부 앞에 놓인 감자 바구니가 아니라, 아침 새벽빛에서 저녁까지 그 아기의 죽음 앞에 경건하게 묵도하는 그림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란 것을 알게 됨으로 생명에 대한 경건함과 절묘한 모성애 신에 대한 구원의 기도 등이 내포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만종>처럼 황혼녘에 여인의 감사기도 하는 모습이, 아기의 슬픔과 죽음의 분위기 속에서도 따스하고 순해 보인 점이 결합되어 작품 내용과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작가의 출생지가 “전북 정읍”으로 나의 아내와 고향이 같은 점(정읍 여중⦁고 졸업)과 중학교까지만 졸업하고 서울 구로공단에서 노동하며 야간부 산업체 특별학급에서 고생하며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고, 문학을 가까이 해서 작가가 된 점이,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책을 접하게 된 동기라고 볼 수 있다.
❍ 소설의 줄거리를 보면,
1. 소설속의 엄마는 변산반도 부안 “곰소항” 인근으로 추정되는 시골마을에서 어려운 시절 넷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자식들을 공부시켜, 서울로 보낸 자식들 집에 자주 왕래하였고, 자식생일을 위해 서울로 자식 집(둘째 딸)을 찾아가던 중 엄마가 서울역 지하철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치고 전철은 출발해 버리는 바람에 칠순의 엄마가 실종되고, 자식들이 어머니를 찾기 위해 광고를 내면서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 주일째이다.”라고 시작된다. 자식들은(큰아들:공무원, 큰딸:작가, 막내딸:약사)어머니를 찾아다니기 시작하지만 어머니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고,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가족들의 엄마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소홀했음을 뼈아프게 깨닫는다.
2. “목화송이가 또다시 흔들렸다.”<엄마를 부탁해>P,158-159 페이지 中
-처녀가 저 멀리서부터 엄마-하고 불렀다. 목화를 따고 있던 장모가 뒷도 돌아보지 않고 왜애? 대답했다. -나 시집 안 가면 안돼? -뭐야?
엄마랑 같이 살면 안돼? 목화송이가 또다시 흔들렸다.
오두막 마루에 앉자 봉황을 수놓다가 목화밭에서 목 놓아 울어대는 아내의 얼굴을 한번 보고 혼인을 했으므로 깊이 든 정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집을 떠나 얼마가 지나면 왜 어김없이 아내가 떠올랐을까?
-열일곱의 아내와 결혼한 이후 오십년 동안의 아버지는 아내를 잃고 나서 나란히 동행하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앞서만 걸어왔던 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러다가 나 잃어버리믄 어쩔라 그러시우.”라고 했던 아내의 말을 떠올리며 가슴이 터질 듯 했다. 그리고 아내의 삶을 회상해본다.
아내의 손은 무엇이든 다 살려내는 기술을 가졌다. 텃밭에 씨를 뿌리면 다 솎아먹기도 벅차게 푸른 새싹들이 아우성을 치며 올라오고 감자를 거두고 나면 당근을, 당근을 거두고 나면 고구마를 쉴새없이 심어 수확하는 것도 아내였다. 가지를 모종하면 여름이 지나 가을까지도 보라색 가지가 지천 이였다. 아내의 손이 닿으면 무엇이든 풍성하게 자라났다. -P,161
남편은 아내를 아내로만 여겼다. 처음 산골에서 아내를 봤을 때의 애틋한 마음은 살아지고 그저 집 지키는 여자로만 여겼다. 집의 모든 것을 도맡았던 아내의 그림자는 너무 컸다. 남편은 아내가 없어지고야 그걸 깨달았다.
3. “나, 왔네.” 서울에서 잃어버린 아내를 찾지 못하고 시골집으로 내려와서 혹시나 하고 이곳저곳 방문을 열어보면서 “나, 왔단 말일세.”... 소설속의 아내는 무릎관절과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심한두통과 유방암과 장탈과 치매 등의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스럽게 살아온 가운데서도 남편과 자식들과 집안 식구(시누이, 시동생균이 등)에게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
남편도 모르게 십년 동안이나 소망원에 큰 액수를 물질적으로 후원금 보내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태어 난지 육 개월도 되지 않아 이름도 없이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인데, 박소녀 아주머니가 균이란 이름을 붙여줬다는 점 등, 배우지 않아서 글도 못 읽지만(딸의 작품을 균이란 아이한테 대신 읽어달라고 했던 점)등을 소망원 홍태희이란 여자를 통해서 뒤늦게 알게 되면서, “오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마음속에서 생생하게 떠오르며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하고 있다. -P, 149
4.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 개월째다.” 소설속의 주인공 큰딸은 이탈리아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광장계단에서 여동생의 편지를 읽으면서, 엄마가 여동생에게 준 “흙 뿌리가 달린 감나무 한 그루”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엄마는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아왔던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자식들은 엄마의 지고지순한 순수한 사랑을 절절하게 절규한다.
“언니, 언니는 엄마를 포기하지 말아줘, 엄마를 찾아줘.” “엄마는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 가게 되거든 장미나무로 만든 묵주를 구해다달라고 했다.”
큰딸은 스시티나 예배당을 빠져나와 기념품 숍에서 “장미묵주”를 사서 손에 든 채 성 베드로 성당을 향해 걸어갔다. 미켈란젤로의 피어타상(아들의 시신을 무릎에 누이고 내려다보고 있는 성모의 눈은 고통에 잠겨있다.) 어미 됨을 부정하고도 아들의 주검에 무릎을 내준 여인. 그들은 살아 있는 듯 생생했다. 성모의 단아한 입술은 눈의 슬픔을 지나 연민에 닿아 있었다. 눈물을 한 방울 흘린 채 뒷걸음치듯 그 자리를 물러나면서, 그제야 성모상 앞에서 차마하지 못한 한마디가 입술을 통해“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고 애원하며 기도하는 것으로 소설의 결말을 맺는다.(*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바티칸시국임을 알게 됨, 우리나라 창경궁만 한 면적에 인구 1500만명)
5. 느낀점
❍나의 엄마의 생년월일은 1923년생 소설 속 엄마 “박소녀의 생년월일은 1936년생으로 13년의 차이가 있다. 소설 속 엄마는 당시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데려갈 것이 두려워 일찍 열일 곱해 혼인을 시켰다고 했다. 우리들의 부모세대는 가난과 온갖 핍박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 오시면서도 자식들을 낳아 기르고 사랑하는 데는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들이 지금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사는 것도 우리들의 부모세대가 열심히 일하며 자식들을 교육시키며 살아온 덕뿐일 것이다. 작가는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의 그 가슴 아픈 사랑과 헌신을 어떻게 그렇게도 그리움으로 애잔하게 묘사했는지 감탄을 자아낸다.
어떤 수필집의 ”사모곡“에는, ”치매를 앓아온 어머니를 잃은 지 열사흘 째,”라고 표현되어있다. 그 수필집작품은 어머니를 찾게 되면서 감격하며 신에 대한 감사함과 모성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노래한 것이 수필의 내용이다. 신경숙 작가가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는지는 모르거니와, 소설의 작품은 엄마의 부재를 통해 엄마의 사랑과 헌신의 삶을 깨닫게 하고 섬세한 문장과 어휘 선택으로 엄마의 삶을 다양한 시각에서 반성하고 느껴볼 수 있도록 조명했다는 점은 수필과는 별개로 그 글 쓰는 상상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작품속의 엄마들과 나의 엄마 모두가 신앙의 엄마였다는 점도 소중하고 특이 할 만 하고, 소설 속 전라도 사투리는 정겹게 느껴졌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엄마의 삶을 회상해보았다.
어쩌면 소설 속 엄마보다도 더 고달픈 삶을 살아오셨을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일본위안부로 끌려갈 것을 두려워 17세 되던 해 아버지와 혼인하여 시골에서 칠남매(실제로는 구남매를 낳음)자식들을 낳아 기르셨다. 일본 징병으로 끌려 가셨던 아버지께서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간장염으로 대 수술을 받으면서 병원비로 가산을 탕진하고 노동력이 상실됨으로 해서, 밭농사를 지어 시금치 등을 머리에 위고 버스를 타고 읍내 장에다 파시고, 해가 저물도록 밭에 김을 매시고, ”곰소항“까지 가서 생선(조기 등)받아와서 읍내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시며 파시고 밤늦게 돌아오시면서 어두운 골목길에 넘어지시어 무릎이 시퍼렇게 멍든 때가 많았고, 자식들을 낳고도 단 하루도 쉬지 못하시고 논밭에서 일할 때가 많았다.
새벽이면 교회 가서 기도하시면서 삼십년 동안이나 교회 새벽종을 쳐오셨다. 위로 큰형님, 큰누님, 작은형까지는 상급학교에 보내지 못했지만 행상으로 나를 비롯해서 동생들은 고등학교까지 보내시는 등 교육열이 높으셨다. 당시 시골에서 고등학교까지 자식들을 교육 시킨 다는 것은 어렵고도 힘든 일이였다. 도중에 출가하신 누님께서는 세 아들을 낳고 스물아홉에 네 번째 아이를 낳다가 잘못되어 돌아가셨다. 이때 엄마는 슬픔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으셨다.
❍나는 공무원생활로 전국을 돌며 근무하다가 부산에서 지금까지 살게 되었고, 다른 오남매 형제들은 서울에서 살게 됨으로, 큰형님께서 거처를 마련하여 부모님을 서울로 모셔 와서 함께 살아오셨다. 아버지께서는 십오 년 전에 돌아가셨고, 엄마는 위암수술도 받으셨고 팔십 오세가 넘어가면서 치매가 있으셔서 가끔씩 집을 나가 찾지 못하여 큰형님께서 엄마의 팔목에 집 전화번호를 새긴 팔지를 끼워드렸다. 엄마가 요양원 같은데 가시는 걸 극구 반대해서 서울의 형제들이 한 달씩 돌아가면서 집에서 엄마를 모셔왔다.(나: 셋째 아들 64세)
소설 속 남편은 늘 아내보다 앞서 걸었다. 어느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모퉁이를 돌기도 했다.(좀 천천히 가겒게요, 그러다 나 잃어버리믄 어쩔라 그러시우)
“당신은 아내를 잃고 나서 자신의 빠른 걸음이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 했다. -P168
이 부분에서 나도 마찬가지로 한참 길을 가다 뒤를 돌아보면 아내는 저 만치 뒤에 따라오고 기다리고 있다가 오곤 한다. 이점에 대해서 병약한 아내에게 배려하지 못하고 지금껏 살아온 점이 마음 아프고 많이 반성했다.
❍ 어머니의 산책
- 나의 아내는 10년 전 뇌경색으로 쓸어져 활동이 어려운 관계로 부산의 우리 집에서는 지금까지 어머니를 한 번도 모시지 못했다.
“이러다가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한으로 남겠다며 한두 달 동안만이라도 부산에 오시게 해서 모시겠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의 봄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해 4월에 어머니께서 부산 저희 집에 오셨다. 그래서 작년 어버이날은 저희 집에서 모시고 어머니의 가슴에 꽃도 달아드리고 꽃바구니도 선물해 드렸다.
계절은 이미 초여름의 날씨이다. 그렇지만 햇빛과 신선한 바람을 쇄며 나들이하기엔 좋은 계절이다. 자주 아파트 단지 주변을 산책시켜 드리면 속으로 얼마나 좋아하신 줄 모른다. 꽃을 보며 앉아계시거나 동래 노인 분들을 만나 이야기하시기도 하시며 즐거워하신다. 낮에 집에 계실 때는 콩을 고루시며 소일하시게 해드렸다.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씻겨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드리니 잘 잡스시고 행복해 하신다. 아내도 “이런 것이 행복인가 봐요...”라며 기뻐하는 모습이 역역하다. 아들 홍윤이도 할머니께 효성스럽게 잘해드리니 흐뭇해하신다.
두 달 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가까이서 지켜보니, 어머니께서는 물 한 모금과 밥알 한 톨에도 감사하시고 드리는 손길위에 “하늘에 복, 땅의 복을 다 받으며 어디로 가든지 만사가 형통하리라.”라고 축복하시며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이 어린아이와 같은 심성을 가지고 계신다. 천국을 이미 소유하고 계신 분으로 확신되며 이 땅위에서의 마지막 소풍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머님, 늘 저희들 곁에 계시면서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희미한 안개 속 같은 무수한 세월을 보내면서 엎드려 계신 모습을 이제 확실히 볼 수 있기에 그 곳에서 흘리신 눈물이 은총의 이슬로 변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적셔주시기에 한없이 감사할 다름입니다.”(1989년4월23일 생신)
송도 바닷가를 산책하시면서는 멀리 보이는 것이 “영도다리”라고 하시니, 할머니의 기억을 떠오르시며,“시媤 어머니께서는 장사도 잘하시고 노래도 잘하셨다며 노래로만 들었던 영도다리를 보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미소 짖으신 모습이 우습광스러웠다.
어머니를 대하는 사람들 마다 모두들 “귀엽다고”하신다. 어머님 당신은 행복하신 분이다. 우리 자식들 또한 기도해주시는 어머니를 지금껏 모시고 살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어머니는 부산에 소풍 오신 것처럼 많은 것을 보시고 서울에 가셨다. 어느 작가의 “귀향”이란 글속에 “노년에 고향을 찾을 때 어느 계절이어도 상관없지만 때는 인생의 허무와 퇴락한 사물들을 드려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인 일몰 무렵이면 참 좋겠다.”고했다.
금년 3월 20일 저의 어머니께서 하늘나라 부르심을 받고 본향으로 돌아가셨다.( 향년 95세 )
어머니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심에 이루 말 할 수 없는 슬픔도 있지만 생명 주신 창조주께 돌아가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시고, 영원히 빛나는 집에서 이제,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함을 누리시게 되는 어머님을 생각할 때, 우리 모두가 돌아갈 하늘나라...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라고 노래할 수 있어, 감사함과 기쁨도 있었다.
어머님의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느 덧 개나리꽃과 진달래꽃과 벚꽃 망울이 터져 새 생명의 탄생을 알려와 거룩하고 신비한 울림이 그윽했다. < 2017년 10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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