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에서
< 부산세관· 수필가 김 형 수 >
뙤약볕과 함께 여름이 지나고 있다. 중부지방은 긴 장마와 폭우로 얼룩지고, 대부분의 남부지역에는 오래 동안 가뭄과 유래 없는 폭염으로 참으로 지내기 힘든 올 여름 이였다.
벌써,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를 지나,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처서處暑 이다.
가을꽃의 전령사인 코스모스가 피어 한들거리고, 여물어 가는 벼 이삭 끝에 잠자리가 살포시 앉아있고, 꽉 찬 옥수수를 따며, 널린 빨간 고추가 가을을 부르는 듯하다.
입추 무렵에는 벼가 한창 여무는 시기이기 때문에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옛날에는 “기청제”를 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금년에는 오히려 비를 오게 해 달라는 기우제를 드리는 모습 도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촛불을 들고 애타게 부르짖은 아우성은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봉숭아꽃 밭에 어린아이들이 앉아서 봉숭아 물 들이기를 하고 있는 한가롭고 청순한 풍경과는 대조적이다. 여름 꽃들이 우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은은한 향기를 흘린다. 바로 그 옆에 세상의 악취도 풍긴다. “생선을 덮고 있는 종이에서 생선 비린내가 나고, 꽃을 덮고 있는 종이에서는 꽃향기가 난다”.는 말도 있다.
“사랑과 기침은 속일 수 없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듯이, 향기도 마찬가지. 향기를 속일 순 없다.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는 우리의 영혼을 소성시켜 주고 생활을 새롭게 해주고, 세상의 악취도 없애 준다. 여심은 수련의 향기에 취해 있다. 밤새 별빛과 달빛의 기를 받고 대자연의 이슬을 머금은 풀 꽃잎들...
중국 청나라 수필가 심복의 자서전인 “부생육기”에 보면, 그의 아내 운(芸)은 말단관리였던 남편의 수입으로 향기로운 고급차를 끓일 수 없어, 연못에 피는 수련으로 향기로운 연꽃차를 만들어 남편에게 주었다고 한다. 수련은 저녁에는 꽃잎을 오므렸다가 아침이면 활짝 핀다.
꽃 봉우리 속에 차를 담은 비단 주머니를 넣었다가 꺼내어 향기로운 차를 만들었다고 하니, 지혜롭고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사실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청순함과 고귀한 기품을 자랑하는 꽃이기도 하다.
바캉스를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다. 바쁘고 고달픈 일상을 벗어나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그 빈자리를 신선한 활력으로 재충전한다. 그리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와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대자연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관조해 보면서, 세상의 탐욕으로 찌든 마음을 다 비우고, 그 빈 마음에 생명의 양식을 풍성히 채웠다면, 삶의 새로운 활력이 솟아날 것이다.
진리에 문이 닫히면 심령이 곤고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지 않으면, 가난한 삶을 살게 마련일 것이다. “우리의 불행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결과다.”
라고 러시아의 소설가 솔제이친이 말했듯이,
삶의 가치나 아름다움은 비록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대자연속에서 창조주의 숨결을 느끼고 호흡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하늘이 준 지혜로 은은한 향기를 발할 것이다.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눈물과 고통으로 오가는 빛과 어둠 속을 왕래하며, 그 세월 속에 모가 난 돌이 깎기고 깎이어 모가 없이 연못의 물결처럼 둥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죽는 것 보다 낫고,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웃음 머금고 찾아오게 마련이다.
삶을 바꾸는 힘은 고난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일 것이다. 왜냐하면, 고난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만물이 결실의 계절을 향하여 달려간다. 모두들 새로운 마음으로 일터에 선다. 하루 종일 결실의 빛을 발하던 태양도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서산으로 가라앉는다. 검푸른 강변산책길을 걷다보면, 시원하고 모두가 삶에 의욕에 가득하다. 아름다운 석양이다.
“과거를 기억하라. 현재를 살라, 미래를 확신하라”
하란 말이 있듯이,
고요한 밤을 맞는 모든 이들이 평안히 내일을
맞이하고 미래를 확신하며
지혜의 영적 가을을 맞이하면 좋겠다.
2013년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기도후원자 김 형 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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